- 삼국유사 '처용'의 노래에 집중
- 용서·화해 아이콘에 새 의미 부여

처용(處容)은 누굴까?

	울산 처용문화제에 등장한 처용탈. 소설 '처용'은 신라 설화 속 처용을 당나라에서 활약한 원조 한류로 그리면서 노래가 갖는 의미를 묻는다. 국제신문 DB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이 과연 누구냐 하는 물음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영역에서 단골손님이다. 처용암(울산시 기념물 제4호)이 있는 울산에 사는 소설가 최항기는 많은 사람이 지금껏 짐작하지 못한 방향에서 처용을 불러내 의미를 불어넣는다.

최항기(사진) 소설가는 최근 펴낸 소설 '처용'(세나북스)에서 다른 건 제쳐놓고 오로지 '노래'에 집중한다. 이 소설에서 처용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로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 대에 서라벌에서 "서라벌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더라!…" 하고 노래했다는 그 처용은 맞다.

나머지는 학자나 문인들이 그간 내놓은 처용의 상과는 맞는 게 없다. 이 소설의 처용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당나라 희종(재위 873~888년) 때 장안에서 천재적인 음감으로 여러 '투가(鬪歌·오늘로 치면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를 누비며 존재감을 높여가던 소년 가수다.

당나라에 황소의 난(875~884년)이 터지자, 반란의 격랑에 휘말린 처용은 당시 정치 격변기로 빠져들던 신라로 온다. 음악천재 처용은 백성 사이에서 조금씩 인기를 얻다가 개운포에서 열린 투가에서 노래로 모두를 웃게 하고 모두를 울린다. 이 자리에서 정쟁과 복수에 집착하던 왕족과 귀족도, 고된 삶에 지친 백성도 함께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간 마지막 노래가 "서라벌 달 밝은 밤에…"이다.

좀 과장해서 요약하면, 최항기 소설가는 처용을 한류의 원조이자 '조용필+나훈아+남진+김건모+빅뱅+…'으로 만든다. 한마디로 멋진 '딴따라'다. 이런 설정에 '당황 또는 황당'을 느끼는 독자가 꽤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것이 노래, 특히 대중가요가 당대 민중과 사회에 갖는 의미를 묻기 위한 장치임은 분명하다.

최항기 소설가는 처용이 온 백성이 열광하는 그 시절의 대중가요로 백성의 마음에 깊이 널리 각인됐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처용가를 용서와 화해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였고, 처용 얼굴을 악귀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썼으며, 조선 시대 궁중춤으로까지 남은 게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이런 설정이 지나친 비약이나 불편함으로 다가올 독자도 있겠지만, 이런 상상 또한 소설의 한 영역이라 볼 수 있겠다. 작가는 연대, 시대배경, 등장인물은 실제 역사에 맞게 배치해 역사소설의 바탕을 깔았다.

최항기 소설가는 부산외국어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역사소설 '고주몽'과 '홍경래의 난'을 각각 2004년과 2006년 소설책으로 펴냈다. 신라 때 '노래배틀'이라니…, 낯설지만 왠지 흥미가 돋는 건 어쩔 수 없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