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내가 사는 공동주택의 승강기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음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이른바 '층간소음'에 대한 주의와 경고이다. 별다른 소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웃 간에 큰 분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얼마 전 다른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 노부부가 사망하고 크게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니, 이를 쉽게 보아 넘길 수만도 없다.

오정희의 '소음공해'는 이러한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유의 비계가 된다. 이 작품은 현대 도시 생활인의 층간소음 문제를 간명하면서도 탁월한 서사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국어교과서에도 여러 번 수록된 적이 있는 '소음 공해'는 중산층 인물의 뒤틀린 허위의식을 까발림으로써, 현대 도시인의 소통 부재와 이웃 간의 무관심을 폭로한다. 특히 이 작품은 우리가 공동의 가치와 규범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외부'의 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관용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음공해'의 대강을 살펴보자.

이 소설의 사건과 갈등은 갑자기 위층에서 들려온 정체불명의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드르륵 드르륵! 이 소리는 아래층 가족의 일상을 타격하고 침범한다. 주인공 '나'는 위층의 층간소음이 도저히 해결되지 않자, 견디다 못해 위층 집으로 직접 올라간다. 소설의 내외적 갈등은 이 장면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나'는 교양 있는 중년여성이기 때문에(그런 인물로 성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적 폭언이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선물(슬리퍼)을 통해 위층의 잘못을 조곤조곤 타이르고자 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시혜적이고 계몽적인 태도는 엄청난 오만이자 착각이다. 왜냐하면 위층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여자의 텅 빈, 허전한 하반신'과 '휠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슬리퍼를 뒤로 감춘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의 묘미는 인물의 성격화와 결말부의 반전이다. 그래서 '나'라는 캐릭터는 이야기 말미의 반전 효과를 배가하는 필연적 장치가 된다. 현대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화(Characterization)에는 우연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도입부에서, 주인공 '나'는 문화적 소양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보듯, 사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생활가치와 규범을 타인에게 과시하는 쁘띠부르주아적 개인일 뿐이다. 여기에서 '나'의 고상한 가면은 철저하게 부서진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소음공해'의 결말부를 장식하는 통쾌한 반전이 아니다. 내가 이 작품을 경유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 도시인의 소외와 무관심'이라는 소박한 주제의 반복이 아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나와 타자의 '관계'를 새롭게 조형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 타인 사이에 놓여 있는 '틈'을 표상하는 층간(層間)은 사회적 공간 개념이다. 게오르그 짐멜을 전유하여 이야기하자면, 층간은 나와 타인 사이를 구획하는 경계와 차이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바닥(위층)과 천정(아래층)은 단순한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나와 이웃의 경계를 식별하고 확정하는 공간적 차이인 셈이다. 현대인은 이와 같은 공간적 '단절'과 '봉쇄'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영토를 구축한다. 이는 도시 아파트('층')와시골 마을('담')의 경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허영만의 '식객-고추장 굴비' 편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시골 마을의 '담'은 벽이나 경계가 아니다. 오히려 '담'은 이웃과 이웃 사이의 정(情)을 잇고 연결하는 중요한 소통의 창구이다. 이와 달리 도시 공동주택의 '층(간)'은 타인이 침범할 수 없도록 차갑게 폐쇄된 '견고한 벽'으로서만 기능한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개별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 관계의 단절과 불신은 공동의 삶을 재앙으로 내모는 단초가 된다. 층간소음 문제는 단순한 주거 갈등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묵시록적 징후일 수 있다. 안성호 작가의 웹툰 '재앙은 미묘하게'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층간소음 문제로부터 촉발된 '나'와 '타인(이웃)'의 '관계 실패'가 어떻게 우리 사회 전체를 붕괴시키는 대참사(catastrophe)로 도래할 수 있는지를 묘파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의 몰락은 저 먼 외계의 침공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찌질하고 미묘한 '관계적 재난'으로부터 개시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를 사적인 갈등이나 분쟁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와 '소통'의 문제로 재인식해야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어쩌면,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공통의 삶을 정초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실천의 가장 일상적 형태라는 점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겠다.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