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 펜싱 에페의 박상영(20·한국체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 이후 기적같은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상영은 보호구를 벗으면서 포효했다.
많은 이가 그의 승리를 분석하며 자기최면이라거나, 절대 몰입의 경지인 '존(zone)'에 들어간 상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박상영의 이날 중얼거림은 '자화(自話·self talk)'를 통한 '이미지 리세팅(Resetting)'으로, 주위의 상황이나 타인의 예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스포츠심리 기술의 한 부분이다. 스포츠심리학의 멘털트레이닝 과정에서는 자신감 향상과 집중력 고조의 한 방법으로 이미 사용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여자탁구 김경아 선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상대의 심리전에 밀리지 않기 위해 "째려보면 어쩔 건데?" 등의 말을 중얼거리며 차분히 경기를 이끌어 승리한 것이다.

우리 펜싱 대표팀은 올림픽 전인 지난 7월 두 차례 심리교육 및 훈련을 했다고 한다. 짧은 기간의 훈련이지만 멘털트레이닝 효과가 대단히 잘 나타난 사례다. 사실 우리나라 멘털트레이닝 분야의 발전은 양궁, 사격 등 순간 집중력이 필요한 경기의 성적 향상과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양궁 대표팀은 일찌감치 멘털트레이닝을 중요한 연습요소로 받아들여 20여 년 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하며 좋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실례로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양궁대표팀은 경기 전 '루틴카드'를 되뇌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루틴카드는 훈련 때 선수들의 리듬을 찾고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해 자신만의 단어나 문구를 적은 카드다. 양궁 남자단체와 개인전 2관왕 구본찬은 "경기 전에 보는 루틴카드에 '자신 있게, 나가도 9점, 과감하게, 후회 없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기보배가 공개한 루틴노트에는 '신중하게 쏘는 것, 내 자세와 기술을 믿는다, 긍정적'이라는 말과 '루틴만 하면 잘될 거야! 루틴만 하면 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루틴은 특정 생각과 행동을 일상화, 자동화함으로써 경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요소를 없애고 집중력을 높이는 운동선수들의 습관을 뜻한다. 비단 양궁, 사격뿐 아니라 골프, 농구, 야구, 역도 등 다양한 종목의 대표적인 선수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루틴을 가진 선수들은 "꼭 지켜야 마음이 편하고 하나라도 어긋나는 게 있으면 불안해져 경기에도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올림픽 국가대표들은 심리검사시스템을 통해 불안감, 자신감, 경쟁심리 등의 수준을 파악하고 휴대용 심리기술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고 시합 전 멘털트레이너와 면담하는 등의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멘털트레이닝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주요 종목에만 집중돼 모든 선수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 종목에 걸친 연구와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는 한마디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다른 종목의 우리 선수에게도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한다. 구본찬은 "많이 떨렸지만 계속 '할 수 있다'는 혼잣말을 했다. 남자 소총 50m 복사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종현도 "펜싱 박상영처럼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슛오프에 임했다"고 한다.

지독한 더위와 경제 불황에 지친 국민들에게, 그리고 '삼포세대' '헬조선'이라고 포기하고 비하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박상영 선수는 대한민국의 멘털트레이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BNK프로골프단 감독·부산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