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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초를 다투는 스리랑카의 내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28 18:25

수정 2022.07.28 18:25

[서초포럼] 초를 다투는 스리랑카의 내일
정치의 시계는 느슨하기도 했다가 어떨 때는 째깍째깍 무서울 정도로 빨리 돌아간다. 경제적 혹은 군사적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국가의 시계는 얼마 전 하루에 60억t이 녹았다는 그린란드의 빙하처럼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정도의 사태를 의미한다.

스리랑카의 정치는 시간만이 아니라 돈도 가벼이 빌려 써왔다. 지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기억의 상실은 문제를 악화시켰다. 국민의 불안 앞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 정치인들은 여야 구분 없이 각기 다른 꿈을 꾸며 좋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20일 의회가 라닐 위크레마싱헤를 서둘러 새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국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 정권에서 일한 총리였다. 그 전에도 그는 5차례나 스리랑카 총리를 역임한 기록이 있지만 실은 그는 한 번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총리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거리에서 시위하는 일반 대중은 그의 기회주의적 접근을 여우와도 비교한다. 국민의 처지에서는 이러한 비유가 당연할지도 모른다. 스리랑카 국민은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시위를 통해 라자팍사 정권을 몰아내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새 대통령을 뽑는 걸 요구해왔지만, 신임 대통령은 벌써 비상사태를 선포해 시위를 강하게 진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국가경제의 붕괴는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악화한 만성적인 병이다. 독립을 전후로 스리랑카의 정치 권력은 소수의 가족정치에 국한되었다. 마힌드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그의 형제인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대통령 자리를 장악했고, 2020년 의회에선 그들 정당이 다수당을 차지해 헌법을 수정하고 막강한 대통령 중심 권력집행 권한을 공고히 만들었다. 그 시기 스리랑카는 '포퓰리즘'과 '싱할라 민족주의'라는 표어 아래 부정부패, 족벌주의, 인권탄압, 강압적 통치, 경영부실 등을 남발했다. 또한 훨씬 높은 이자의 상업대출에 의존한 금융기관에 대한 부채는 2004년 2.5%에서 2019년 56%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스리랑카의 세계 부채 중 26%나 차지해 '국가 대 국가'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부채 덫'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도미노 현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채무함정 외교'는 스리랑카뿐만이 아니라 파키스탄, 몰디브, 방글라데시와 같은 이웃 국가들에 큰 과제이다. 결국 국가의 무능이 직접적으로 국민의 고통으로 극대화한 것이다.

현 위크레마싱헤 대통령의 정치적 통찰력과 행정능력이 무척 뛰어나다고 해도 의회에서 그의 정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것은 그에게 큰 핸디캡이며, 정치의 열쇠는 아직 라자팍사 가문과 그들의 다수당 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불온한 시기에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리랑카의 현존하는 정치적 상상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전 정권의 포퓰리즘에 포퓰리즘으로 답을 하는 것은 장기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슬로건이 남발하는 포퓰리즘의 정치에서 위험한 시계를 늦추는 유일한 주춧돌은 보편적인 가치와 전문가의 전문성에 기반한 문제해결 능력이다. 정치의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는 것은 결국 모든 정치인이 겸허히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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