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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업에 눈 돌리는 한국 청년들 | 아베노믹스로 청년 완전고용 IT·서비스·제조업 ‘한국인 환영’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7.02.24 13:51:23
  • 최종수정 : 2017.02.27 10:34:29
부산외대를 졸업한 정석영 씨(25)는 최근 일본 철도, 물류 기반 대기업 니시테츠 본사 입사를 확정 지었다. 신입사원 연봉도 국내 대기업 못지않고 거주자 월세 지원 등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다. 정 씨가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계기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인 청해진 사업(청년 해외 진출)에 적극 참여하면서다. 부산외대는 청해진 사업을 위해 원어민 수업, 해외 탐방 등 다채로운 지원책을 아끼지 않았다. 정 씨 역시 일본어 습득은 물론 IT 관련 경력을 부단히 쌓았고 일본 취업 사이트 마이나비 등을 적극 활용했다. 정 씨는 “일본은 취업난보다 기업이 청년들을 못 구하는 구직난이 있다. 일본어 능력은 기본, 문화 차이를 용인할 수 있는 열린 자세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아베노믹스 여파로 일본 기업들이 살아나면서 최근 일본 취업에 성공한 국내 청년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취업비결, 빛과 그림자, 취업 방법 등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봤다.



“3년 전만 해도 한국 학생들이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거나 유학, 인턴을 갔다가 취업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엔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서 리쿠르팅 행사를 대규모로 하는가 하면 개별 학과로 아예 공문, 혹은 에이전트 회사를 보내 우수학생을 선발해가기도 한다. 국내 중견기업 이상의 연봉, 주거 비용 지원 등 좋은 대우를 해줘 만족한다는 졸업생들이 적잖다.”

김유영 동덕여대 일본어과 교수의 전언이다.

이런 국내 취업준비생들의 일본 진출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일본에서 고용된 한국인의 수는 4만8121명. 2015년(4만1461명) 대비 16% 이상 증가했다. 일본 내 한국인 근로자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4년(11.3%)과 2013년(9.3%)에 이어 점점 더 늘어나는 모습이다.

해외 취업지원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하 산인공)이 집계한 통계에서도 일본 취업 ‘붐’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산인공을 통해 해외서 일자리를 구한 한국인은 모두 4811명. 그중 약 23%에 해당하는 1103명이 일본 취업에 성공했다. 전년과 비교해 471명(74.5%) 늘어났다. 일본 취업자 수가 미국(1031명, 전체 취업자 수의 21.4%)보다도 많고 싱가포르(642명, 13.3%)·호주(353명, 7.3%) 등 다른 국가를 크게 웃돈다.

국내 일본 취업 열풍이 뜨겁다. 사진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기업 한국인 채용박람회에서 한국인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국내 일본 취업 열풍이 뜨겁다. 사진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기업 한국인 채용박람회에서 한국인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일본 기업, 어떤 한국 인재 찾나

▷IT와 사무·서비스 직종순 급증

일본에서 이른바 ‘취뽀(취업 뽀개기·취업에 성공)’한 우리 국민을 살펴보면 최근 3년간 IT와 사무, 서비스 직종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크게 늘었다. 산인공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외 취업지원 프로그램 K-Move를 통한 일본 취업자(2074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1001명(48.2%)이 IT 관련 직종, 43%(892명)는 사무·서비스 직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기계·금속 등 제조업 분야(110명, 5.3%)에서도 취업자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취업 한국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첫째, 취업준비생들이 녹록지 않은 국내 취업 시장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린 데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 기업의 구인난도 한몫했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약 1000만명 감소하는 등 심각한 인구절벽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36개였을 정도로 최근 일본 노동시장은 초과 수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 인재 서비스 업체 ‘엔재팬’에 따르면 지난해 말 226개 일본 기업 중 86%가 인력난을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인을 채용했더니 오히려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 취업자 수 증가에 불이 붙었다는 게 현지 목소리다.

특히 한국인 취업이 가장 활발한 일본 IT 업계는 최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에 기업의 대형 투자가 잇따르는데도 인력난을 겪는 대표적인 분야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여전히 17만1000만명의 IT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 바꿔 생각하면 한국 구직자들에게 IT 직종은 ‘취업 블루오션’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정보크리에이트’에서 부동산 관련 앱 개발 업무를 하는 금바다 씨(27)는 “우리나라에선 IT가 인기 분야인 데 반해 일본 젊은이 사이에선 대학 전공이나 직장으로 IT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여건에선 일본어에 능숙한 한국 인력이 취업하기 수월한 편”이라고 전한다.

“일본에선 한국과 달리 문과 출신들이 IT업체 인력의 약 40%를 차지한다. 기초지식과 인성만 갖췄다면 누구에게나 채용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한 정석영 씨(25)의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사무·서비스 직종 역시 지난해 취업자 수(483명)가 2014년(112명) 대비 2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하며 상종가다. 특히 호텔·관광 서비스 분야가 호황을 맞았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관광 서비스는 어느 분야보다도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수인 직종.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나 중국어 등 제2외국어에도 능통한 한국인은 일본 기업이 환영하는 인재다.

호텔·관광 서비스 업종에서 한국인 취업이 활발한 이유는 또 있다. 온천과 호텔업은 고령사회인 일본에서 대표 실버산업으로 통하지만 주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근무해야 하고 노인을 응대해야 하는 업종을 일본 젊은이들이 꺼리는 분위기다. 그 빈자리를 일본과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인이 메웠다는 얘기다. 박삼헌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수는 “한국엔 대학을 갓 졸업한 뒤 일본 온천이나 리조트로 취업하려는 학생이 많다. 5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 비즈니스호텔 등 굵직한 호텔 체인으로의 이직을 계획한다”고 설명했다.

제조업도 일본 내 한국인 취업자 수가 늘기 시작한 분야 중 하나다. 일본 오사카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소속인 허 모 씨는 “3~4년 전부터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증가세를 체감하고 있다”며 “한국인은 단순 생산직보다는 제품을 개발하는 개발직군으로 채용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어만 잘하면 취업성공?

▷해당 분야 경력관리 꼼꼼히 해야

일본 기업들이 해외 인력 문호를 개방했다 해서 일본어만 잘한다고 모두 취업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취업하는 업종이나 경로는 각자 다르지만 일본 취업자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끈기 있는, 시쳇말로 ‘덕후(한 가지에 몰입하는 사람)’ 기질이 있다는 점이다. 박삼헌 교수는 “일본에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해당 경력을 미리 쌓는 건 기본, 여기에 더해 일본에서 오래 생활할 각오로 취업에 임해야 채용 과정에서도 돋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취업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도 적잖다.

현지 취업자들로부터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민거리는 높은 세금이다. 한·일 양국에서 비슷한 연봉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일본의 근로소득세가 한국보다 평균 5%가량 높다. 지난해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인 330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소득세율은 15%, 일본은 20%다. 일본 세금이 150만원 정도 더 비싼 셈이다. 최고 소득세율 역시 일본(45%)이 한국(40%)보다 높다.

언제 받을지도 모르는 국민연금을 꼬박 납부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일본에 3년 미만 거주하는 사람에 한해서 환급도 가능하지만 그 이상 살고 귀국할 경우엔 돌려받지도 못한다. 이수정 씨(26)는 “매달 국민연금으로 나가는 돈이 30만원 가까이 된다. 평생 살 생각이 아니면 되돌려 받지도 못하는 터라 너무 아깝다”며 한숨 쉬었다.

졸업 전 일본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취업비자 발급 문제로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예정증명서는 졸업장과는 달리 취업비자 신청서류로 인정되지 않는다. 보통 4월 초에 첫 출근하는 기업이 많은 일본 문화에 비춰볼 때 2월 말 졸업 예정자는 비자 수속 완료까지 시간적으로 촉박할 수밖에 없다.

초기 정착 시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도 사회 초년생들의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다. 일본에선 주택을 임차할 때 보증금 개념으로 보통 3~4개월치 방값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인이 방을 구할 때 일본 현지인의 연락처를 달라는 집주인도 적잖다. 조한미 씨(26)는 “전화번호·주소·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현지인을 사귀어야 하는데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 일본 취업 준비법&노하우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 활용, 면접 때 경어 능력 중요

일본으로 취업 기회를 잡으려 한다면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K-Move’라는 이름의 청년 해외 취업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는 ‘월드잡(www.worldjob.or.kr)’에 들어가보면 일본 기업의 채용 정보나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어로 일본 기업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 편하다. 해외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산업인력공단의 ‘해외 취업 성공 장려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일본 영사관이나 대사관에서 하는 취업지원제도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히로시마총영사에서는 ‘한국 청년인재 구인구직 매칭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인 채용을 희망하는 기업의 접수를 받고 한국 인력을 모집해 서류나 면접 절차를 간편하게 받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공공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일본 기업의 채용 문을 두드리는 법도 있다. 일본 취업 희망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구직 사이트로 ‘리쿠나비’ ‘마이나비’가 있다. 한국의 ‘사람인’ 같은 채용 사이트로, 회사에서 제시하는 채용 조건이나 절차, 외국인 근로자 대우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신세이코퍼레이션의 임범식 사장은 “그 기업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외 인력에 대한 대우나 고용 조건 등이 비교적 열려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해외 취업 박람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박람회는 일본 기업을 탐색하는 기회도 되지만 직접 현장에서 리쿠르팅 절차 중 하나인 1차 면접이 진행되기도 한다.

면접 때 채용 담당자들이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일본어 소통 능력이다. 면접 때 채용 담당자들이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일본어 소통 능력이다. 임범식 사장은 “무엇보다 일본 기업에 취업한 후 잘 적응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 정도이다. 일본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일의 성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스스로 조직에 스며들지 못한다. 또 면접 때는 정확한 발음으로 크게 얘기해 면접관에게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영 교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채용 과정 중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인터뷰다. 면접 자리에서는 일본어 능력 시험 점수로는 드러나지 않는 경어 사용 능력이 드러난다. 고급스러운 언어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용호 청년위원장은 "일본 기업들은 경력직 보다는 대학을 갓 나온 구직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종신고용을 지향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나 애사심, 조직 내에서의 화합을 중요시 여기는 직장문화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면서 "채용 각 단계별로 구직자의 인성과 가치관이 기업문화에 맞는지 유심히 따져보게 되므로 취업 전 그에 맞춤화된 자기소개서, 면접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재팀 = 박수호(팀장)·정다운·서은내·나건웅 기자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96호 (2017.02.23~02.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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