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이민청 유치, 부산만 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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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이민청 설립 법안 국회 제출
인천 등 지자체 유치전 치열

부산 정치권 외면하는 사이
일부 시민·언론만 전전긍긍

지역소멸 막을 효율적 대안
총선 주요 이슈로 부각돼야

‘출입국 이민관리청’ 설립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안이 지난 2일 여당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흩어져 있는 외국인 관련 정책을 한 군데서 조율하여 인구 격감과 노동력 감소에 대처하겠다는 취지다.

이민청 문제는 점차 다민족·다중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전 속도로 볼 때 빨리 서둘러야 할 국가적·사회적 과제이고, 지역의 입장에서도 소멸해 가는 지역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인천, 안산, 아산, 천안, 경북, 전남 등 많은 지자체가 이민청 유치 경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민청이 자기 지역에 오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 효과가 얼마나 큰지 각종 자료를 만들어 배부하고 시민 공청회도 연다. 특히 안산시는 주한 116개국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지지선언을 이끌어 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주한 필리핀 대사관과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안산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부산시는 잠잠하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올해 총선에 나선 일부 예비후보만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일 뿐, 부산의 현역 국회의원들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부산의 시의원이 47명이고, 16개 구·군의원은 170여 명이다. 이들도 하나같이 이민청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일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지난해 10월 이민청 부산 유치를 위한 범시민 준비회의를 한 번 가졌고, 이를 〈부산일보〉가 사설과 1면 하단기사로, 부산MBC가 일요일 토론 프로그램으로 한 차례 다뤘을 뿐이다. 해운대구 지역 언론인 ‘해운대 라이프’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미약한 움직임으로 중앙의 외청 하나를 부산에 가져올 수는 없으며, 쟁쟁한 경쟁 상대인 인천시나 안산시를 이길 수는 없다. 작년 6월에 재외동포청을 가져간 인천시가 이민청마저 가져간다면, 그렇지 않아도 여러 지표에서 인천에 뒤져서 말이 많은데, 부산은 이제 더는 ‘한국 제2의 도시’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산에 이민청이 와야 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너무나 자명하다. 누구나 알다시피, 부산은 한반도의 관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떠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점이고 도착점이다. 최초의 해외 영사관인 부산왜관이 1407년 부산포에 들어섰고, 부산의 개항도 인천이나 원산보다 훨씬 앞선 1876년 12월 이뤄졌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국토 남단인 부산에 이민청을 설치하여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고 과도한 수도권 쏠림을 막아야 하는 당위가 있다. 부산은 지난 10년간 정주인구가 6.2%나 줄어든 전국 2위의 인구 감소 지역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 이에 따른 지역 쇠락의 가속이라는 4중고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민청이 부산에 설치되면 전국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외국인 유학생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부산에 드나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잠깐씩 머물다가는 생활인구가 대폭 늘게 된다. 생활인구가 늘면 다 죽어가는 숙박업소와 카페, 부산의 명물이라는 돼지국밥집과 밀면가게에 조금이나마 핏기가 돌게 된다.

부산은 정부가 지정한 유일한 국제관광도시다. 하지만 국제관광도시여서 무엇이 좋아졌는지 부산 시민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부산의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도 이민 행정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2030엑스포 유치에 그렇게 실패했으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다음 프로젝트로 도시를 살릴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이 지난달 25일 발의되고, ‘글로벌 허브 도시 추진단’이 시청에 설치된다고 한다. 이 법에 의지하여 물류, 금융, 디지털 및 첨단 신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가덕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유치, 북항 재개발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한다. 그런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이민청 부산 유치는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부산시와 정치권, 시의회와 구·군의회, 경제단체, 연구기관, 대학, 시민사회가 모두 떨쳐나서서 이민청 부산 유치를 위한 별도의 민관 합동 기구를 빨리 출범시켜야 옳다. 그렇게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맞추어 대응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전문가 좌담회와 시민 공청회를 잇달아 개최하여 시민의 지지를 하루속히 등에 업어야 한다. 총선 국면이라는 게 부산의 현안을 푸는 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 상황에서 이 이슈를 부산 전체의 이슈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면, 선거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그때는 버스가 저만치 떠나버린 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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