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을 목전에 두니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한다. 십수 년 길었던 여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결승점을 앞두고 문득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머무는 감정은 기쁨, 후련함, 걱정, 불안 기타 등등.
돌이켜보면 나는 참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왔구나 싶다. 동시에 모두가 청춘이라 부르는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를 허비했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내가 에세이를 통해 찬란하게 빛나는 별에 할 수 있는 말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사흘 밤낮으로 고민했다. 대학이란 뭘까, 좋은 대학 생활이란 뭘까. 스물이란 뭘까. 청춘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뭘까…, 고뇌의 결과,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기로 했다. 스물 초반, 불확실한 미래에 가장 불안하고 방황하는 시기 이 글을 읽고, ‘아니. 이런 놈도 제 앞길 찾아 잘 사는데, 나도 못할 게 뭐 있나?’ 하면서 용기나 의욕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학 입학. 본교 중국학부로 입학했다. 본래는 일본어융합학과 지망이었는데, 대학 원서를 넣기 직전에 진로를 틀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생활기록부도 일어과 지망으로 다 맞춰놓은 마당에 거창한 이유로 진로를 바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막연하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을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이미 아는 것을 배운다면 대학을 왜 가지’라는 생각. 아마 외국어특기자 전형을 준비하느라 JLPT N1과 JPT를 진작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발상이었으리라.
처음 배우는 언어는 물론 어려웠다. 유년기부터 공부했던 한자 덕에 독해와 어휘는 큰 문제없이 적응할 수 있었지만, 난해한 어순과 성조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회화 중심의 학과커리큘럼은 아무리 공부해도 청해와 회화가 늘지 않는 나에겐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언어학부가 으레 그렇듯이 현지에서 장기간 살았거나 왕래가 잦은 학생이 많았기에 중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많았다. 자연스레 나는 열등생이 되었고, 멋모른 채 중문과에 진학하게 했던 의욕은 2년에 걸쳐 서서히 꺾이고 말았다.
학과 수업에 적응을 못 했으면 대학 생활이라도 열심히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본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MT는커녕 개강 총회, 종강 총회도 참가하지 않았다. 인맥? 사회생활? 그런 건 개나 주라지. 그럼, 아르바이트라도 했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집에서 반대한 탓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반대에 반대할 의욕도 없었다. 대외활동도 마찬가지. 관심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꼈고, 그나마 1학년 때 교수님의 추천으로 가입한학과 동아리는 잘 풀리지 못해서 대인기피만 생겼다. 이 대인기피는 동아리 탈퇴 후, 길에서 처음 본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사이비 종교 소굴에서 강제로 사이비 체험을 한 이후 더 심화된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2년 후 내 손에 남은 것은, 고등학교 때 취득한 일본어 자격증과 대학 1학년 때 받은 소논문 대회 최우수상, 대인기피성향. 그뿐이었다.
마라톤에서 뒤처지는 기분을 아는가? 주변 친구들이 찬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보내는 시기에 나는, 집과 학교에 처박혀서 허송세월한 것이다. 모두가 대외활동, 공부 등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나아갈 때, 나는 그저 힘겹게 숨을 쉬는 게 고작. 이 얼마나 한심한 삶인가.
3학년이 되었다. 중국어를 때려치우고 일본어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도망친 것이다. 복수전공은 일본 IT로 정했다. 중국학부에 진학한 순간부터 복수전공은 일본 IT로 하겠다고 다짐한 탓이었다.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컴퓨터 언어는 중국‧일본어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기도 했고. 2년 동안 일본어 공부를 쉰 탓에 실력도 예전만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다시 몸을 던진다는 것이 큰 걱정이긴 했지만, 대학은 배우려고 다니는 것이란 일념 아래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다짐이었다.
동시에 대인기피도 고치고 싶어 주기적으로 봉사도 시작했다. 대학 3학년이나 되어서 사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식당에서 주문도 못 하는 건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주로 도서관 봉사에 나갔다. 단순히 책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우선 나한테 말을 걸 수도 있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을 때의 거부감을 줄이고 싶었기에. 달에 두세 번을 3개월간 계속하니 다행히 차도가 있었다. 전보다 사람 눈 정도는 마주치고, 간단한 안내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컴퓨터 언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컴퓨터 언어도 언어는 언어인지라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어 대신 일어를 택했던 청소년기, 타고나길 수학 머리가 없던 나에겐 순탄하기만 한 길이 아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기초 수업이라 이해가 될 때까지 붙잡고 있으면 수업에 따라는 갈 수 있었던 것일까. 중국어가 싫어서 도망친 길이었는데, 다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3학년 2학기를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문자 하나가 왔다. ‘2024 청해진 예비자과정 추가모집’ 공지였다. 문자를 받고 청해진을 알아보니, 일본의 IT 기업 취업을 지원하는 국비 연수였다. 문자를 받자마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동시에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 저주받은 사회성으로 사람 속에 섞일 수있을까’와 같은 흔해 빠진 걱정이었다. 그때 내 등을 떠밀었던 건 절친과 가족이었다. 고민할게 뭐 있니. 얼른 신청하라는 말을 하루종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서야 겨우 신청할수 있었다.
2학기 개강하자마자 면접을 봤는데, 인생 첫 면접이라 과하게 긴장을 한 탓에 자기 어필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서러웠다. 게다가 면접이 10분 만에 끝났다. 당연히 불합격이겠거니 싶어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펑펑 울고 있으니, 문자가 왔다. 결과는 합격. 지금 생각하면 면접에서 뵈었던 교수님께서 면식이 있는 교수님이기도 했고, 일본IT전공 수업을 조금 들었기에 교수님의 사전 조사 과정에서 가산점이 들어갔던 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연수는 생각보다 본격적인 취업 연수였다. IT 프로젝트와 일본 취업 시장을 겨냥한 이력서 작성과 모의 면접이 주된 활동이었는데, 나는 연수에서 했던 모든 것이 처음이라 진도에 따라 가는 것만 해도 벅찼다. 남들은 손쉽게 하는 걸 나만 스트레스 잔뜩 받으며 어렵게 해내는 것 같아서 울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더는 포기할 수 없었고,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기에 어찌저찌 끝까지 버텼던 것 같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한 학기가 끝났다. 연수가 끝나기까지 약 한 달이 남은 시점. 이력서도 거의 완성되었고, 기업 분석 요령도 익혔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연수를 듣는 사람 모두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대인기피도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심적으로 여유가 조금 생기니 주전공의 아쉬움이 떠올랐다. 일본 기업에 취업할 심산이긴 하지만, 명색이 중국어 전공인데 중국어 자격증이 없으면 취업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생겼다. 고민하다 국외 연수 출국일 이틀 전에 시험이 있어서 바로 수험 신청했다. 신청해 두면 공부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연수는 종강 이후에도 계속되었기에, 학교에 나가는 김에 연수 시간표보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공부하고, 수업에 들어가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2주를 공부하고 HSK 4급을쳤다. HSK는 청해, 독해, 작문 총 세 과목을 보며, 세 과목을 합한 점수가 180점을 넘겨야한다. 그런데 웬걸. 역시나 청해가 관문이었다. 중국어가 귀에도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중급이라고 얕본 탓이다. 허탈하게 떨어졌겠거니 하며 머리를 비우곤 다음엔 2주 벼락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큰 교훈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틀 뒤에 있을 출국 준비를 시작했다. 캐리어 사고, 짐 챙기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니 어느새 출국이다.
국외연수는 오사카 소재 IT 기업에서 진행되었다. 해외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집이라 출국하는 모든 과정, 일본 단기 체류 등 모든 것이 낯설었고, 실수도 잦았다. 회사에서는 개발 업무를 체험했다. 조별로 업무가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에 회사 사장님 앞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발표도 했다. 우승(?)은 다른 조가 했지만, 많이 배웠다. 해당 연수 덕에 일본어와 컴퓨터 지식도 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조금 늘었다. IT 업계 개발 공정도 일부 체험할 수 있었다. 학생으로서 하기 힘든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새삼 반년 동안 참 좋은 사람들과 부대꼈구나 싶었다.
열흘 간의 연수를 끝내고 돌아오니, 꿈을 꾼 것 같았다. 몇 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을 잔뜩 하고 온 것만 같아서. HSK 결과도 나왔다. 독해 93점, 청해 60점, 작문이 55점. 도합 208점으로 무사히 합격했다. 청해와 작문 점수를 보니 너무 처참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뭐가 됐든 합격했으니 다행이었다.
학년이 바뀌자마자 청해진 본과정에 신청했다. 예비자 과정에 참가한 덕에 별 탈 없이 합격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취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예비자 과정의 심화 연장선이었던 커리큘럼 덕에 기업 분석과 면접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았단 것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실전에서 말아먹으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아무리 연습해도 과도한 긴장은 극복이 되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태어나 자란 것을.
그리고 기업설명회를 잔뜩 듣고, 약 1년간 IT 전공 수업을 듣고, 면접을 보고, 자기 분석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개발직에 적합한 인재는 아니란 것이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들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중국어보다 느렸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마침 청해진 연계 기업에 네트워크 계열 기업이 있어서 지망 기업을 수정했다. 예전부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물리적 작업에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추린 지망 기업은 단 두 곳. 용기 내서 연수 내 모의 면접 모임에도 끼었다. 모임에 끼워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설명회를 듣고, 1차 면접을 보다 한 학기가 끝났다. 여름방학에도 연수는 계속되었다. 무더위와 함께, 어김없이 시작된 프로젝트의 시기. 이번 프로젝트는 일본인회 회원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웹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면접도 보면서 장장 한 달 반을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유능한 팀원을 만나 프로젝트에서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가장 가고 싶었던 기업에 내정을 받았다. 어찌저찌 20대의 큰 관문을 하나 넘은 셈이다.
이렇게 나는 살고 있다. 지금은 여름의 프로젝트를 계기로 부산 일본인회 회장님과 연이 닿아 팀원과 외주: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학업에도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이제 사람 눈을 마주치며 말할 수도 있고, 발표도 할 수 있다. 면접도 예전만큼 긴장하지 않는다. 3년 전, 아니 1년 전의 나로선 꿈도 못 꿀 일이다. 대학 생활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대학3학년 2학기일지 모른다. 청해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분명 도태된 나만 남아있었겠지….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느낀 것은, 실패가 두려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중요한 건 성공 여부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라는 것. 사소할지라도 그 경험 하나하나가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 힘이 들 때마다 상기하는 말이 있다. 포켓몬스터의 옛 주인공인 사토시(지우)의 말이다. “迷ってる時間があるなら、まず動いてみる。それで失敗したって、何かは残る。無駄なことなんて何もないさ”.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우선 움직여보자. 실패하더라도 남는 것이 있어.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라는 말인데, 나는 이 말을 듣고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의 내게 있
어 이 말은 내 대학 시절 후반을 관통하는 말이다.
20대는 흔히 방황의 시기, 과도기라고도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분명,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예전의 나와 같이 잔뜩 위축 되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우선 머리를 비우고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길이 있다. 주위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도 재밌지 않겠는가?
나는 여전히 겁쟁이지만, 어떻게든 더 나은 나를 위해 나아갈 것이고, 버틸 것이다. 이런 히키코모리도 움직여서 변했는데, 당신이라고 그렇지 않을쏘냐. 나아가자, 일단 움직이자. 움직이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응원하며 이만 말을 줄이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