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혁
10대는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늘 평균점 이상은 받아오던 성적이 점점 내려가, 공부의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일본어를 연습해서 졸업하면 놀러 가자는 말을 듣고 무작정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기에 공부는 순조로웠고, 정신 차려보니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내가 있었다. 결과는 JLPT N1 한자 60/60 문법 및 독해 60/60 청해 54/60 총점 174점. 만점을 받지 못했던 게 아쉬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도 의외로 길은 열린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어른들이 시키는 것들에 싫증을 내면서도 그 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입시를 향해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해, 마지막으로 회사에 취직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외에 길들은 소위 재능 있는 사람들만 걸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게 있어 일본어 공부란 ‘레일을 벗어난 길’이었다. 이전까지 흥미는 있었어도 진로로 삼지 못 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대표적으로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가 그랬다. 초등학생 시절 지역에 꽤 큰 콩쿠르에 나갈 정도로 피아노를 열심히 쳤던 기억이 있다. 이대로 계속해 나가면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그만둬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다른 분야도 대부분 그랬다. 어차피 그만둬야 하는 것. 진지하게 파고들어봐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고, 하나에 크게 몰입하는 것을 손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랬던 것이 일본어 공부라는 작은 일탈을 시작으로, 하고 싶었지만 차마 손에 잡지 못했던 것들을 꽤나 진지하게 하나둘씩 건드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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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된 나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그림을 ‘직업’으로서 가지고 싶어졌다. 10대 시절, 입시가 끝난 후, 부쩍 늘어난 여유시간에 나는 그림을 그렸다. 원래 남는 시간에 게임과 만화에 몰두했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 피아노에 열중하여 보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고 숙련이 되니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장래에 그림 관련으로 종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전에 나였다면 금방 포기했겠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일로 결과를 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나는 군대에서 모았던 돈을 밑거름으로 삼아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준비했다. 컴퓨터를 사고, 학원에 등록했다. 학교도 과감히 휴학 신청을 하고 그림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원도 기왕이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매주 일요일마다 학원에 가서 피드백을 받고 집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총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시간을 그림에 투자했고, 취업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그림을 SNS에 업로드하여 팔로워를 3천 명까지 모았고, 적은 돈이지만 개인 의뢰를 받아 작업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했다. 그 후,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림 공부를 하면서 대학 자체에는 큰 미련이 없어졌다. 하지만 최대 일반 휴학 기간이 2년이기에, 자퇴와 졸업의 기로에 놓여있던 나는 졸업장을 위해 복학을 선택했다.
복학 후, 전공은 일본IT로 결정했다. 게임업계에 취업할 확률이 높은 만큼, 개발자들과 대화가 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렇게 낮에는 대학 생활을 하며 집에 돌아오면 그림을 그리면서 보내다, 학과 공지사항에서 일본문부과학성 “일본유학시험”이라는 제도를 발견하여 신청하게 되었다. 내가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영향을 받았기에, 직접 생활하면서 그것들을 향유하고 싶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고, 두 번째로는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지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일본어로 수업을 들으며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동아리 활동이 더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유학을 간다면 꼭 현지 동아리(그림 관련)에 들어 활동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1년 유학 기간 동안 학교에서 여러 가지 문화 체험 프로그램(다도, 궁도, 꽃꽂이, 가부키, 축제 등)을 운영하여, 그것을 전부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좋았다.
또한 방학기간에는 내가 평소에 관심 있어 하던 일본 게임 기업의 인턴십에 지원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열려있어, 일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내 취업길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1년간 달마다 117,000엔 상당의 장학금을 받으며 금전적인 문제 없이, 내가 생각했던 걸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지원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운이 좋게도 학과 대표로 선발되어 유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공지 확인 이후 급하게 준비했기에, 실질적인 준비 기간은 2주 정도 남짓이었다. 그래서 합격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대망의 1차 시험. 내용을 대부분 숙지하지 못하고 시험장으로 향했지만, 문제 유형이 jlpt와 굉장히 유사했다. 유형별로 총 4장으로 나눠져 있었고, 마지막 파트인 독해는 난이도가 상당했다.
하지만 독해는 가장 자신 있는 파트였기 때문에, 마지막 문제를 풀고 시험장 밖을 향하던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었던 기억이 난다. 10대 때 열심히 공부해두었던 일본어 실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리고 2차 면접. 자세한 내용은 규정 상 말할 수 없지만, 20대 때 그림을 그렸던 경험과 그걸 활용해 세워둔 미래 계획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직 말하는 것이 많이 서툴렀기에, 자신감이라도 가득 차 있는 인상을 주기 위해 주어진 질문에 힘차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대망의 결과 날. 내 모습을 면접관 분들이 좋게 봐주셨는지 2025년 합격자 명단에는 나의 수험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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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글을 순서대로 나열해놓아서 그런지 내가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전해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내게 있어 진로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대 중반에 들어선 나는 취업이라는 벽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니 하고 싶은 것들에 몰두하며 살아왔기에, 나라는 사람은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스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때까지 좋아서 해왔던 것들이 피와 살이 되어 국비장학생에 선발되었고, 이것은 당당히 내 자기소개서 한 줄에 추가될 것이다. 이제는 5천 명 가까이 모인 X(前 트위터) 팔로워 숫자 또한 나의 강점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최근 태국의 TVexpo라는 이벤트 기획에 필요한 캐릭터의 디자인을 정식으로 의뢰받았다. 이 결과물 또한 내 포트폴리오에 실리게 될 것이다.
나는 비록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토익점수나 기사 자격증 같은 것은 없지만,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인생에 갈림길이 여럿 있었고, 나는 그 길을 걸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혹여나 하고 싶은 것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뿐인 대학 생활,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권해드리며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