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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아세안(ASEAN) 2: 아세안의 확장

© 아세안연구원 | 글: 박문선


1980년대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이 일어났다이 전쟁은 우리에게 킬링필드로 잘 알려져 있다아세안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기에 그 당시만 해도 5개국이었던 아세안 국가들이 외교적으로 UN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베트남에서는 크메르루주(Khmers rouges)의 킬링필드로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국제 여론전을 펼쳤고 아세안에서는 크메르루주(Khmers rouges)의 킬링필드가 나쁘지만 그래도 주권이라는 개념이 있는 다른 주권국의 내정 간섭을 위해 전쟁하면 안 된다는 외교전을 펼쳤다궁극적으로 UN에서 아세안의 외교전이 성공했다.

 

이와 관련한 외교활동을 통해 이들은 아세안으로 협력하면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자각했다그 이후 5개국들이 아세안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했지만 80년대, 90년대 지나면서 아세안은 확장되었다. 90년대에 내륙에 있는 동남아시아 개별국도 아세안에 합류하였다.

 

아세안 초기 설립 당시 해양 동남아시아와 내륙 동남아시아는 체제적으로 적대적인 상황이었다그런데도 1967년도에 아세안이 만들어졌을 때, 5개국의 외교부 장관들은 아세안의 정치적인 비전으로 동남아시아를 전부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내륙 동남아시아의 개별국은 공산화되어 적국이었지만 지역통합의 의미에서 내륙의 공산 체제들도 함께 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1990년대를 거치면서 이 비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2022년부터 동티모르가 가입후보국으로 승인되어곧 동남아시아 전체 11개국으로의 확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세안 +3, +6. 그리고 RCEP

아세안은 원래 5개 국가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10개 국가가 정식 구성원이다. 1990년대에 다른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통합하여 정치적 비전을 이루었고이는 아세안이 아시아의 주요 지역 기구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그 결과로현재 아시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역 기구들은 아세안에서 파생되었다.

 

이러한 아세안 파생 기구 중 하나는 '아세안 지역 포럼(ASEAN Regional Forum)'으로이 포럼에는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또한아세안+3(ASEAN+3) 기구에는 한국중국일본이 포함되어 있으며아세안+6(ASEAN+6) 기구에는 호주뉴질랜드인도가 추가로 참여하고 있다또한,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라는 다자 자유무역체제도 존재하며이 체제는 아세안+6 국가에서 인도가 제외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아세안이 처음 5개국으로 미미하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지역통합을 위한 엄청난 노력으로 현재는 아세안 커뮤니티라는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이는 힘의 논리로 이해되는 국제 관계와는 달리신뢰 관계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역통합을 의미한다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개인뿐만 아니라 상호 간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이것이 지금 아세안 커뮤니티이다서로를 믿고이웃을 생각하며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리고 아세안은 1967년 처음에는 한 장짜리 계약서로 시작을 했다가 2007년 40년의 역사를 거쳐 헌장을 제정하였다아세안 자신들만의 헌장으로 그 내용은 아세안의 목표원칙의사결정 방식분쟁 해결 기구 등을 포함하고 있다이를 통해 아세안은 지역통합과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세안연구원202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