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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지역원 임두빈 교수] 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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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에 본인의 승용차에 스티커로 붙이면서 전국에 캠페인으로 번지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이 시기에 한국은 인구 천 명당 100대 이상의 비율로 승용차가 급속하게 보급되던 시대였다. 크게 늘어난 자가 운전자들이 앞차 뒤 유리창에 붙은 이 문구를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갖자는 의도, 즉 공동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레가툼 번영지수’는 유엔 인간개발지수(HDI)처럼 각국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글로벌 지수다. 올해 3월에 발표된 2023년 레가툼 번영지수로 본 한국의 성적은 안전보안 37위, 개인의 자유 42위, 국가행정 30위, 사회자본 107위, 투자환경 25위, 기업여건 37위, 경제의 질 9위, 생활환경 26위, 보건 3위, 교육 3위, 자연환경 63위로 전 세계 8개 지역 167개 국가 중 종합순위 29위로 차지했다. 이중에서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107위를 기록한 ‘사회적 자본’이다. 평소 하는 일이 브라질 사람들이 현실을 구성하고 인지하는 개별적인 방식과 생각의 문법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터라 브라질의 지수를 살펴보았다. 11개 세부 지표 중에서 ‘사회적 자본’과 ‘자연환경’이 각각 35위, 18위로 한국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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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 간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나 규범, 신뢰 등을 총괄하는 지표인데 우리나라는 동아시아-태평양 18개국 중에서도 15위로 최하위권이다. 주요 세부 항목별 신뢰도를 봐도 사법시스템 155위, 군 132위, 정치권 114위, 정부 111위 등 스스로 선진국으로 착각하는 ‘후진국’의 성적표다. 한국은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터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을 지표로 몸소 증명하고 있다. 물론 글로벌 측정 지수중 하나만으로 우리를 스스로 폄하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지속 발전 가능한 삶의 질을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문제다.


다시 “다 내 탓이오”로 돌아가 보자. 전 세계 사회에서 문화적 규범과 가치는 개인의 행동과 집단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티핑포인트로 민주주의가 확립됐다. 이후 다양한 시민운동과 참여를 통해 민주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며, 사회적 다양성과 개인의 의사표현이 중요시되는 시대로 발전하면서 ‘내 탓’은 시민들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전환을 상징하는 캠페인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급속한 성장과 현대화를 통해 생활수준이 상승하면서 ‘베네펙턴스 현상’, 다시 말해서 “잘되면 내 탓, 못 되면 네 탓”이란 사회적 정서가 팽배했으리란 추측도 쉽게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탓한다’, ‘못살면 터 탓’이란 옛말로 미루어 볼 때 ‘남 탓’은 우리 한국민의 정체성과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네 탓’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사회적으로는 신뢰상실과 충돌을 유발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개인이 자기 탓에만 매몰되면 “한국의 자살률, 브라질 살인 사망률 웃돌아”란 기사 제목처럼 한국은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비극을 계속해서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앞서 본 것처럼 최하위권 성적표를 받은 ‘사회적 자본 지수’ 점수가 우연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 죽이는 사회와 남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회, 어디가 더 ‘위험사회’일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지리적으로 먼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삼바, 정열의 나라, 축구와 커피 정도만 떠오르는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입장을 바꾸면 브라질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유기체로서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우리 뇌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편향’이라고 부르는 사고의 지름길을 선택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성찰을 위해 ‘남’을 볼 때도 ‘소득과 부에 비례한 행복’만을 우리가 채워야 하는 정답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세상을 넓게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삶과 행복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최근 긴 장마와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와 초임 초등교사의 극단적 선택 등, 연일 쏟아지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탓’만 하려니 ‘개인’이 위험하고 ‘남 탓’만 하려니 ‘사회적 자본’이 열악해 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사회 전반에 ‘내로남불’이 만연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은 일정 부분 지나친 소셜네트워크 사용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남의 사생활을 쉽게 볼 수 있는 환경. 그러나 그 환경은 조작된 환경이다. 조작된 남의 삶과 스스로의 삶을 비교해서 하는 ‘내 탓’과 ‘남 탓’이 ‘자살’이나 ‘묻지 마 살인’이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사실 ‘내 탓이오’는 천주교 주요 기도문에 나오는 ‘고백의 기도’ 중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기도문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 지도층들이 ‘남 탓’만을 그만하고 故 김수환 추기경처럼 ‘내 탓’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살아남기 위해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당신들 탓’과 같이 ‘내로남불’을 좀 하더라도 말이다. 아예 ‘네 탓’이란 말을 지워버리고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무엇 때문’이나 감사를 표현하는 ‘당신 덕분’을 사용하는 캠페인이 아쉬운 오늘날이다.


출처 : 국제신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400&key=20230801.99099000342)

2023. 8. 4